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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이 넘는 서울의 인구가 배출하는 쓰레기의 집하장 난지도! 한강하류에 위치한 범람원(氾灆原)으로 예전에는 다양한 야생화가 만발하여 꽃섬이라 불리기도 하였고 오리가 물에 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오리섬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어느 날 제방이 만들어지면서 서울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지금은 폐쇄되어 생태복원 사업이 진행되는 곳이다. 경제발전과 더불어 서울의 생활쓰레기의 변천사를 간직한 선사시대의 조개더미와 견줄 만하다.
한때는 생태계의 낙원에서 악취가 풍기는 쓰레기장으로, 그리고 다시금 생태계의 보금자리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애당초 신중하게 검토하였더라면 막대한 돈을 들여 복원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인데~~ 서울의 청계천도 이와 유사한 수순을 밟고 있다. 복개를 할 당시에는 서울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였으나 수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 도심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골칫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때늦은 반성 속에 복개된 도로를 걷어내고 친환경적인 개천을 만들어 도시미관을 살리면서 균형 있는 도심개발을 한다고 하니 다행한 일이 긴하나 100년을 넘기기도 전에 막대한 돈을 들여서 되돌려야 하는 신중하지 못한 행정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의 행정은 적어도 백년이상의 앞을 내다보며 설계되고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나 토목축조물들이 많다. 반면에 우리의 주위에는 20년도 되기 전에 허물어져 물이 새는 아파트를 어렵잖게 볼 수가 있다. 왜 그럴까? 궁핍하였던 재정으로 이끌어가야 하였던 당시의 행정으로서는 불가피하였다는 불가피론도 있으나 이것은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신중하지 못한 행정도 어쩌면 500년간 지배하여왔던 조선시대의 유교적인 가치관이 큰 몫을 하였다고 생각된다. 무엇이던지 “내가 시작하여 내가 매듭 지움으로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내 이름을 남기고 조상들에게 문중의 이름을 크게 남겼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강한 과시욕도 한 몫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공동체의식 보다는 자신과 자신의 가계보를 중요시 하였다는 것은 우리나라 가옥의 구조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집을 둘러싼 높은 담이 있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이 펼쳐진다. 마당에서 마루에 오르기 위해서는 축담위로 올라 디딤돌을 밟고 마루로 올라간다. 마루에 올라 높은 문턱을 넘어서 안방으로 들어가 간다. 대문에서 시작하여 안방까지 들어가는데 몇 단계를 거처야 하는 셈이다. 문을 열면 바로 거실이고 거실의 높이와 침실과의 사이에 문턱 없이 들랑날랑 하는 서구식 가옥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안방에서 쓸어 모은 먼지를 마당에 휙 버리고 마당에서 쓸어낸 쓰레기를 남의 눈을 피해가며 골목으로 던지는 습성은 지금도 남아 있다. 골목은 내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열린 음악회, 열린 교육 등 사전에도 없는 “열린” 단어가 물결을 이루면서 관공서, 학교, 공원 등의 울타리가 사라지며 열린 관공서, 열린 학교 등으로 단장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야를 시원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구조물이 열렸다고 하여 마음까지 열렸다고 할 수는 없다. 열린 마음으로 네 것 내 것 구분 없이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서로 가꾸고 다듬어 나갈 때 아름다운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고 자기 과식보다는 숨기면서 헌신하고 봉사하는 마음이 뿌리를 내려야만 밝은 미래 희망찬 내일이 후손들로 이어져 튼튼하고 강한 나라, 살기 좋은 나라로 이끌어가는 바른 길일 것이다.
한국의 미래상을 그려보며/정명선 2004년 3월 1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