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pe_china.gif중국과 교류의 물꼬가 터진 이래 한중간(韓中間)의 교류확대(交流擴大)는 밀려오는 홍수(洪水)처럼 불려져왔다. 영원(永遠)히 만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던 이산가족(離散家族)들이 상봉(相逢)하고 많은 사람들이 상호방문(相互訪問)하면서 이제는 친밀(親密)하다는 정도를 넘어서 공동체(共同體)란 인식(認識)으로 확산(擴散)되고 있다. 식탁위에 오르는 식품(食品)의 절반이상이 중국산이고 값싼 중국산 가전제품들이 내수시장(內需市場)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예전에는 고가품(高價品)으로 분류되었던 대나무 제품이 값싼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시장에 큰 변혁을 일으키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력 잃은 국산제품들이 시장에서 밀려나고 생산 공장들이 폐쇄(閉鎖) 되므로 서 고용감소(雇傭減少)를 유발(誘發)하는 부작용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위기(危機)를 기회(機會)로 만들어가는 지혜(智慧)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그러나 정작 위기에 처했을 경우에 기회로 만들어가는 사람은 흔치 않다. 왜 그럴까? 적극적사고(積極的思考)와 소극적사고(消極的思考)를 가진 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고 우리민족은 성급하게 포기하고 성급하게 결과를 잡으려 하는 성격에 기인(起因)한다고 생각한다. 탈냉전이후(脫冷戰以後) 새로운 국제질서가 자리를 잡아가고 인트넷의 등장으로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확실한 지구촌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변혁의 와중에서 부각(浮刻)되는 사람들이 바로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朝鮮族)이다. 핏줄은 분명 단군(檀君)할아버지의 자손(子孫)이지만 조상(祖上)들의 이주(移住)에 의해서, 36년간의 일본압제를 피하여, 독립운동을 위하여, 중국으로 건너간 후손(後孫)들이 중국 땅에서 조선족(朝鮮族)이란 소수민족(小數民族)으로 분류되어 한국어를 구사하며 자치구형태로, 또는 부분적인 집단촌(集團村)을 이루며 살고 있다.

 

중국인의 국적(國籍)을 가지고 있지만 완전한 중국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조선족(朝鮮族)으로 분류(分類)되고 한국에 들어와서는 중국인(中國人)으로 대우(待遇) 받아야 하는 중국인(中國人)도, 한국인(韓國人)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방황하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같은 단군(檀君)할아버지의 자손(子孫)으로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중국거주 교포(僑胞)들을 위한 특별한 배려(配慮)를 하기에는 정치적(政治的)으로 많은 문제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따스한 손결이 그들을 감싸고 기하급수적(幾何級數的)으로 늘어만 가는 한중교역의 가교역활(架橋役割)을 할 수 있는 이점을 살리려면 단군자손에 대한 배려는 분명히 해주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유럽, 미국등지에 거주하는 동포들은 1세, 2세를 거치면서 한국어 구사(驅使)는 기대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고 이질적(異質的)인 문화(文化)에 동화(同化)되어 서류상으로만 한국동포로 기록되고 있는 실정(實情)에 비유(比喩)한다면 수십 년이 지나서도 한국의 전통문화(傳統文化)을 이해하고 한국의 언어(言語)를 구사(驅使)하는 이들에게 좀 더 따뜻한 손길을 뻗어야 하는 것이 당연(當然)한 혈육(血肉)의 정(情)일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취업중이거나 잦은 방문의 기회를 가지는 동포들 역시 눈앞의 이득(利得)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먼 안목(眼目)으로 앞을 내다보며 변화하는 한중관계(韓中關係)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새로운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한국에서 자녀교육에 투자의 손길을 뻗친다면 당장의 어려움이 겹쳐진다 하여도 머지않아 양질(良質)의 부(富)를 창출(創出)하고 자녀들에게 확실한 부를 넘겨줄 수 있다는 것을 유념(留念)해야 할 것이다. 


2004년 6월 10일  / 정명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