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에 기대보는 기대(期待)와 소망(所望)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인 1884년 조선조말엽 갑신년에 개화파의 정치세력인 김옥균, 박영효,서광범,홍영식등이 주축이 되어 조선의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외치며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3일 천하로 끝나 버린 사건이 있었다. 외세와의 결탁, 정치적 권력투쟁의 부정적인 면도 있었으나 조선사회가 개혁의 소용돌이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조선보다 약 30년 앞서 개혁을 주도한(1853년, 미국 페리제독의 통상요구) 일본도 조선과 비슷한 과정이 있었으나 정치적인 배경이 우리와는 사뭇 달랐다. 일본은 막부정치로서 사무라이가 지배하였고 조선은 사대부가 지배하였다. 또한 일본은 여러 막부의 권력이 시대적인 소명에 따라 불가피하게 명치천황에게 결집되어 일사불란한 개혁을 이끌 수가 있었으나 우리는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민비와 대원군의 갈등으로 인하여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그 당시의 잘못된 정치는 36년간의 일본 통치로 이어져 백성들은 굶주림에 시달려야 하였고 젊은 여자들은 정신대란 이름아래 일본군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노리개로, 청년들은 전장의 총알받이로, 혹은 징용으로 끌려가 꽃다운 젊음을 짓밟히며 삶을 접어야 하였고 국토는 황폐화 되었었다.


그 후유증은 지금도 일본을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60년 후인 1944년 갑신년에는 유럽에서 미국의 아이젠하워 장군의 총지휘하에 미영연합군의 북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었고 이 작전의 성공으로 독일은 패망하였고 이듬해 일본이 원폭의 위력 앞에 무릎을 꿇어 1945년 조선은 일본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어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60년을 주기로 갑신년은 우리 민족과 매우 깊은 인연을 가지고 큰 개혁과 변혁을 일으키는 해로 기록되었다. 올해는 갑신년 원숭이띠의 해다. 신정도 구정도 모두 지나갔다. 소용돌이치는 정치권의 움직임으로 국민들의 마음은 불안하지만 “위기가 기회이고, 태풍 뒤의 하늘이 더 맑다”는 옛 어른들의 말을 상기해 볼 때 꼭 불안하게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지난해의 수출흑자에 내수 침체란 기형적인 산업구조가 국민모두의 가슴을 조여 왔지만 정치권의 꿈틀거리는 변화의 조짐이 경제 활성화로 이어져 활짝 핀 무궁화가 하늘가득 뒤 덮여 민생의 가슴에 한 아름의 선물이 내려지길 기대한다. 

소용돌이치는 정치권을 바라보면서~~/2004년     정명선